1기당 1조 넘는 부담·4억불 신용장까지 조건
북미·유럽·일본 시장 배제, 50년 족쇄 계약 논란...대통령실 '진상조사' 착수
이재명 정부, 성과 집착의 산물 비판…"법·원칙 지켰는지 조사"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뉴스후플러스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뉴스후플러스

체코 원전 수출을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 맺은 합의문이 공개되면서 한국 원전 산업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원전 1기당 1조원이 넘는 부담, 4억 달러 보증 신용장, 50년 유효한 독소 조항까지 포함된 '굴욕적 계약'이라는 비판이 정치권과 업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즉각 진상 파악을 지시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법·원칙 준수 여부를 전면 조사할 방침을 밝히면서 사태는 국정조사급 파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 1조원 넘는 조건과 4억 달러 신용장 족쇄

지난 1월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는 충격적인 조건이 담겼다.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 규모 물품·용역 구매 계약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 원) 기술 사용료 납부 4억 달러(약 5600억 원) 보증 신용장 발급 등이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원전 1기 수출 시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신용장은 계약 불이행 시 은행이 대신 지급하는 일종의 '백지수표'로, 한 번 발급되면 10년이 지나야 삭제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

◇ 북미·유럽·일본 시장 배제…'팀코리아' 스스로 목 졸라

합의의 핵심 독소 조항은 시장 분할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한국은 체코·중동·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에서만 신규 원전 수주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면, WEC는 체코를 제외한 유럽 전역,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시장을 독점하게 됐다.

표면적으로 한국이 차지한 영역이 넓어 보이지만, 가능한 수주 가능 물량은 WEC 쪽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전 세계 신규 원전 414기 가운데 한국이 진출 가능한 시장은 38기(9.2%)에 불과하다. 반면, WEC는 103기(24.9%)에 접근할 수 있어, 2.7배 격차가 벌어진다.

더불어 한국이 배정받은 지역은 러시아·중국의 영향력이 강하거나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원전 필요성이 낮은 곳이 많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러시아 입김이 절대적이고, 아프리카·남미 역시 중국과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등 중동은 기회가 있지만, 원전 경험이 없어 변수 투성이"라고 우려한다.

합의 이후 한수원은 실제로 유럽 주요 프로젝트에서 줄줄이 철수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폴란드,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스웨덴 등에서 사업을 추진했지만, 올해 들어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을 내렸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 산자중기위에 출석해 "폴란드 원전 수주전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 시장에서 힘을 계속 쓸 건지, 아니면 미국 시장을 겨냥할 건지 생각해서 미국 시장을 겨냥해야 된다라는 결론을 얻었다"며 사실상 유럽 시장을 포기했음을 인정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를 발판 삼아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갈 것이란 기대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유럽 시장을 WEC에 넘겨주는 대가로 체코 원전 수주에만 목을 맨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성과 집착이 부른 '굴욕'…50년 유효 계약

합의에는 50년 유효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파문을 키운다. 단순히 이번 체코 원전 계약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반세기 동안 한국 원전의 글로벌 진출에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자 개발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기술조차 WEC의 기술 자립 검증을 거쳐야만 수출할 수 있도록 명시됐다. 기술 자립을 확인하는 권한을 WEC가 쥐게 된 셈이다.

1997년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 전신과 맺은 계약에서는 10년간 총 3000만 달러의 기술료만 지급했지만, 이번 합의는 원전 1기당 2400억 원을 반복 지급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원전 수출이 이미 수익성에서 적신호가 켜졌다는 점이다.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의 누적 수익률은 0.32%에 불과하고, 초과 공사 비용 충당으로 인해 적자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수원이 제출한 2025년 반기 사업보고서에는 바라카 원전 관련 누적 손익이 3329억 원 손실로 잡혀 있다. 

이에 정치권은 "윤석열 정부가 성과를 내려 무리한 협상을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실 역시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즉각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9일 오전 회의에서 "국민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또 강유정 대변인은 "한수원·한전은 공공기관으로, 협상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졌는지, 원칙과 절차가 준수됐는지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쟁점은 △공공기관이 법과 규정을 어기고 무리한 계약을 맺었는지 △성과 집착으로 국익을 훼손했는지 △50년짜리 족쇄 계약을 되돌릴 수 있는지 등이다. 대통령실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재협상 요구, 책임자 문책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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