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고 사색하며 쾌(快)에 이르다】 4부 운동장에서 강단까지... ④ 스모키 마운틴의 안개

그 옛날 아버지가 내게 구경시켰던 창경원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기억에 애틋하게 남아 있다.

그 선물이 얼마나 큰 결단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얼마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지 어른이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한국체대 교수로 이직할 무렵, 나는 용인대 퇴직금으로 가족에게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이참에 캐나다와 미국 전역을 여행할 생각이었다.

꼼꼼히 계획을 짜며 예산을 챙겨보니 천만 원이 좀 넘는 퇴직금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항공료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데 체류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묘안을 생각해 냈다. 태권도로 미국에 진출해 있는 선후배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태권도는 전 세계로 퍼져있다. 일찍이 외국으로 간 태권도인들은 능력있고 성실해서 각 나라에서도 대부분 자리를 잡았다. 미주만 하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된다.

그들은 고국에서 온 선후배를 무척 반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동료나 후배에게 연락을 취해봤다. 그들은 반기며 언제라도 오라고 환영했다. 이제 실행할 일만 남았다.

한국체대로 출근하기 직전, 받은 퇴직금으로 우선 미국 국내 항공권을 끊었다. 캐나다에서 시애틀로,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또 LA에서 애틀란타로, 내쉬빌에서 텍사스로, 노스케롤라이나로, 그리고 버지니아로,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이런 식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항공권을 예약하고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다. 딸 아이가 곧 3학년이 되고, 아들이 1학년이 될 새 학기 전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다음 선후배들에게 연락하면 그들은 공항까지 나와 주었고, 그의 가족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훌륭한 숙식을 제공했다. 저택에 가까울 정도로 집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 손님이 묵을만한 방이 따로 있었다.

낮에는 후배 아내가 주변을 여행시켜주고 저녁에는 주로 이야기 파티가 벌어졌다. 오랜만에 고국에서 온 친구나 선후배 간에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 선후배 안부부터 돌아가는 나라 정세까지 맥주 한 잔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이틀이 금방 갔다.

손님을 맞이한 집도 이틀 정도는 대접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그렇게 짧은 기간 정을 나누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짜며 세운 철칙이 하나 있었다. 어느 집에서도 이틀 이상은 머물지 말자. 아무리 반가워도 그들도 그들의 일상이 있으므로 방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며 신세를 졌던 것이다. 나는 어쩌다 가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렇게 미국 전역을 한 달이 넘도록 돌아다녔다.

체류하는 동안 태권도인으로 서로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귀찮아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해준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들이 한국에 오면 나도 기꺼이 그들을 대접했다. 지금도 해외에 있는 선후배가 한국을 방문하면 가능한 호텔과 식사를 제공한다. 태권도인이기에 서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LA나 뉴욕은 워낙 넓어 일주일 이상은 체류해야 대충 둘러볼 수 있어서 정확히 한 집에서 이틀씩만 머물렀다. 그러면 아쉬운 듯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루는 테네시주에 있는 스모키 마운틴을 가게 되었다. 정상에 도착하는데 차로 4시간이나 걸렸다.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로 둘러싸인 산은 현실과는 다른 신선계 같았다. 그 안개 속에서 야영도 하고 송어도 잡으며 우리 가족은 다양한 체험을 즐겼다. 자연이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기가 막힌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4시간 걸려 도착한 정상 부분에서 산 아래까지 다시 2시간 가량 래프팅하며 내려오는 놀이였다. 2~30m 넓이의 계곡물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웠다. 아슬아슬한 전율과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마음은 무아지경이 되었다. 2시간이 긴 줄도 모르게 내려왔다. 아이들은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했다.

여행을 계획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한 달 조금 넘게 여행하는 동안 참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체험했다.

아버지가 선물해준 추억을 이어받아 나도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으니 내 아이들은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와 같은 추억을 선물할 것이다.

▣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총장 약력 (태권도 공인 9단)

▲ 한국체대 체육학과 졸업, 동국대 체육학 석사, 한국체대 이학박사, 고려대 철학박사 ▲ 전 용인대·한국체대 교수 ▲ 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장ㆍ도장위원장,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학술교류위원 ▲ 전 대한체육회 이사 ▲ 전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감독 역임 ▲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상임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한국유엔봉사단 부총재

▶ 수상: 대한체육회 체육연구상 (2005),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 (2007), 캄보디아 왕실대훈장 (2022), 미국 대통령 최고봉사상 (2022),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2025) 등

▶ 저서: '태권도 탐구논리'외 25권

▶ 연구논문: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외 20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