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27일, 아버지의 회갑 날이었다. 온 집안이 손님 맞을 채비로 부산했다. 이천에서 오래 사업을 했기 때문에 손님이 밀려올 것은 뻔했다. 회갑연 장소는 이천 시내 대형 컨벤션 홀이었는데 상호는 기억나지 않는다.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인데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인덕공고에서 태권도 전공 체육 교사를 모집하니 한번 가보라는 내용이었다.
경기대학교에서 코치 채용을 탈락시킨 데 대한 미안함으로 배려한 자리 같았다. 배신감도 컸고, 돈도 잘 벌고 있었기 때문에 시큰둥하게 거절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크게 역정을 냈다. 그때까지도 내가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체육선생은 교육자가 아니냐? 잔치고 뭐고 다 중단해라. 그리고 너 빨리 이력서 내고 와. 그러지 않으면 넌 잔 올릴 자격 없다.”
아버지의 호통에 회갑연 준비는 중단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아버지가 내어준 차를 초스피드로 운전해서 월계동에 있는 인덕공고로 갔다. 세 달 동안이나 실업자로 있는 아들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인덕공고 임빈화 교감은 내 이력서를 봐도 되냐고 하면서 대충 보더니 이천의 안신주유소와 아버지 성함을 안다고 했다. 형수가 제자라고 했다. 내가 그 집 아들이라는 건 몰랐다고 했다. 이력서를 제출하고 막 나오려는데 서랍 사이로 후배의 이력서가 보였다. 후배도 이력서를 제출한 듯했다. 되돌아가 내가 올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이유를 물었다.
후배가 이력서를 낸 것 같은 데 그 자리를 차지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교사 자리도 선후배가 있어요? 어휴, 의리가 그런 데도 있어요?” 그는 나를 김대식 교장에게 데려갔고, 교장은 곧 바로 나를 인덕전문대학 이사장실로 데려갔다.
인덕공고는 1955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육영 사업을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만들었는데 그 부설 재단으로 은봉 박인덕 선생이 설립한 학교였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인덕이라 한 것이다. 당시 인덕공고 교사로 있던 김혜란 교사가 인덕전문대 초대 이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인덕학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를 바쳐 남을 섬기자’라는 그리스도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한 학교다.
이사장은 내게 교회를 다니느냐고 물었다. 종교와는 무관한 나였기에 교회는 가본 적이 없지만, 집 근처에 교회가 있어 늘 그곳을 지나치곤 했다. 브리태니커에서 돈을 벌고 있긴 했지만, 아버지가 안 이상 경기대학교에 이어 이번에도 취업에 실패하면 면이서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임기응변으로 집 근처에 있는 장로 교회에 다닌다고 둘러댔다. 거짓이 들통날까 긴장이 됐다. 대충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따라갔는데 김혜란 이사장은 대뜸 한마디 던졌다. “부모님께 감사해야겠어요. 외양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건데 외양을 보니 딱 체육 선생님이네.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일단 안심이 되었다. 브리태니커에서 돈을 잘 벌고 있었고 또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렸지만, 그래도 영업사원보다는 교사가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게 경기대 코치를 권했던 교수의 동료 아들인 이규면 선생이 인덕공고 체육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태권도를 전공한 체육교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교수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 자리를 추천했던 것이다.
내가 돌아온 뒤 잔치는 흥을 더했다. 아버지 말대로 아직 잔은 올리지 않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결과가 궁금했을 것이다.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고 하니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형제들이 차례로 절을 하고, 사회를 맡은 기생은 능청스럽게 회심곡 한 가닥을 불러제끼며 우리들의 효심을 극으로 끌어올렸다. 홀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라오케가 처음 들어올 무렵이어서 식장은 노래와 온갖 소음과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회갑 집을 돌아다니며 사회를 보는 여자를 당시는 기생이라고 불렀다. 이제 아들이 선생이 되었으니 아버지는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어머니도 기분이 좋았는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축하객들과 어울렸다. 잔칫집답게 분위기는 흥겨웠다. 그날 아버지는 기생 저고리 옷섶에 돈을 마구 질러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을 목청껏 불렀다.
▣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총장 약력 (태권도 공인 9단)
▲ 한국체대 체육학과 졸업, 동국대 체육학 석사, 한국체대 이학박사, 고려대 철학박사 ▲ 전 용인대·한국체대 교수 ▲ 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장ㆍ도장위원장,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학술교류위원 ▲ 전 대한체육회 이사 ▲ 전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감독 역임 ▲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상임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한국유엔봉사단 부총재
▶ 수상: 대한체육회 체육연구상 (2005),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 (2007), 캄보디아 왕실대훈장 (2022), 미국 대통령 최고봉사상 (2022),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2025) 등
▶ 저서: '태권도 탐구논리'외 25권
▶ 연구논문: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외 2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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