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는 나대로 바쁘게 지냈다. 아이들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 일을 대충 정리하고 6개월 만에 다시 미국에 들어갔다.

안용규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안용규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부모로서 학교 담임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내가 담임과 통화를 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부모가 학교를 찾는 일이 없다고 한다. 문화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아빠가 학교를 찾아가겠다고 하니 20분 간격으로 선생님들과의 타임 스케줄을 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봐줘서 고맙다며 한국 전통의 소형 인형을 선물하자 황송해했다.

오히려 우수한 학생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부탁하러 갔는데 되려 깍듯한 대접을 받고 보니 조금은 겸연쩍었다.

당시 미국 학교에는 ESL 클래스라는 제도가 있었다. 테스트를 거쳐 어학실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학생들을 모아 반을 만든 후 언어를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많은 한국 학생들이 그렇듯 우리 아이들도 수학이 월등했다. 그 반에서는 도저히 수준이 맞지 않아 함께 수업할 수 없다며 한 학년을 높여 월반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곳 학생들은 나중에 어느 대학을 주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교사는 의아한 듯 왜 대학을 가느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대부분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졸업 후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의 일을 돕거나 음악을 한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약속된 다른 교사와는 상담도 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옮겨야겠고 생각했다. 자연환경은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지역이었다.

1996년 무렵이라 인터넷이 몹시 느렸다. 한참을 검색해 수학능력 고사 SAT 성적 순위를 알아봤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가 가장 높았다. 토머스 제퍼슨 학교가 있는 지역이다. 에버리지 포인트가 98점에 가까웠다. 명문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우리나라 강남 8학군 같은 곳이었다. 고민할 것 없이 메릴랜드 초등학교로 옮기기로 하고 그날로 짐을 쌌다.

다음날 워싱턴 DC에 있는 용인대 제자 우광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을 비행기로 보낼 테니 집에 데리고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삿짐 차의 앞자리에는 아이들 태울 공간이 없었다. 뒤칸에는 짐을 실어야 했고 아이들을 그곳에 태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고차는 다시 중고차로 팔고 먼저 아이들을 비행기로 보내기로 했다.

미국은 패밀리 서비스가 잘 돼 있어서 직원이 아이들을 맡으면 보호자에게 인계할 때까지 책임을 져준다. 그 때문에 안전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비행기로 보내고 이삿짐 차로 밤새워 12시간을 달려 아이들에게 갔다. 모두 허름한 짐들이지만 4톤 트럭에 아내와 같이 이삿짐을 싣고 미국 벌판을 달리는데 영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기막힌 유랑이었다.

이사하기 전, 아내가 아이들이 울고 집에 들어온 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아이들 안부를 물으면 늘 잘 있다고 했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바나나가 왔다며 치즈를 던지고 툭하면 떠다밀며 괴롭혔다는 것이다.

바나나는 겉과 속이 노랗다 해서 그들이 동양인을 차별할 때 쓰는 말이다. 아들 종화는 학교에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데 미는 바람에 이가 깨져서 울고 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부모가 가슴 아플까 봐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남부는 특히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다. 수모와 멸시를 당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겪지 않아도 될 고충을 너무 일찍 겪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Microsoft Copilot을 통해 생성된 AI 이미지(사진=뉴스후플러스)
Microsoft Copilot을 통해 생성된 AI 이미지(사진=뉴스후플러스)

]하루라도 빨리 영어를 익히라고 일부러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남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스프링필드까지 찾아가 학교를 보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빨리 영어를 숙지해야 미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생각만 했지, 인종차별을 겪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영리해서 차별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가슴 아픈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있었던 종화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황당하다고 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각자 자기 나라를 표현해보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들 종화는 태극기를 그렸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신의 그림을 발표하게 하고 잘 그렸다고 모두 박수를 쳐주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다민족 국가이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자기 나라를 표현했는데, 자기 차례가 되면 모두 일어나서 브이 자를 그리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종화 차례가 되었음에도 아이는 화를 내면서 심통을 부렸다고 한다.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선생님과 말을 하지 않겠다며 계속 심통을 부렸다. 이윽고 교장이 아내를 호출해서 학교를 찾아갔는데 선생에 대한 모독이라며 퇴학을 시키겠다고 했다. 겨우 초등학교 학생인데 그깟 일로 퇴학을 논한다는 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아무튼 아내는 바짝 긴장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해보라고 설득했다.

종화는 당당하게 “아빠가 태극기는 나라의 얼굴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이 태극기 한가운데를 압정으로 뚫어서 그런 선생님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라고 했다. 아내는 뜻밖의 대답에 놀랐다고 한다. 선생님은 학생의 그림을 칠판에 모아 압정 한 개로 고정을 한 다음 모두에게 보이게끔 하려 했던 듯하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선생님은 바로 종화의 손을 잡고 교실로 가서는 압정을 빼고 테이프로 태극기 귀퉁이를 고정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추고는 “종화,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이 실수한 거니까 괜찮아요.” 하면서 선생님과 포옹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인종차별을 받으며 오히려 대한민국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해진 것 같다며 그런 아이를 보고 뭉클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며 아내가 웃었다. 그 뒤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종화를 볼 때마다 ‘Smart Boy’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화로 그 소리를 들은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 어린 것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하며 패밀리모토(Family Moto)를 다시 외워보라고 했다. 패밀리모토는 아이들이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꼭 지키자고 약속한 일종의 가훈이었다.

Pride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Respect (상대를 존중하라), Honesty (정직하라), Best Effort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라) 였다. 타국에서 살아갈 아이들이기에 어려서부터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것인데 어린데도 나름 그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레이크브레덕중고등학교(Lake Brad-dock Secondary School)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그곳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두 아이가 모두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는데 아들은 색소폰에서, 딸은 플롯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딸은 음악성이 뛰어나서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는데 음악교사가 아내에게 피아니스트를 시켜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정도다. 아내는 남편이 원치 않는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나는 예술을 전공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 점을 나중에서야 후회했다. 자신들의 꿈을 부모 때문에 이야기도 못 꺼내 보고 성장하게 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로 인해 너무 어려서부터 고난을 극복하며 살게 된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회한으로 남는 부분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미국에 잘 적응해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때의 미안함을 씻을 길이 없는데, 오히려 딸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딸이 우리 부부가 해외로 출타할 때 항공권을 전액 다 부담한다. 그리고 양평에 집을 마련해 우리를 쉬게 하고 있다. 한편 염치없고, 한편 고맙고 대견하다.

집만 사기로 날리지 않았어도 아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다른 때는 무덤덤하다가도 아이들 문제 앞에서는 가끔 상처가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런 우여곡절을 겪는 도중에 나는 또 심각한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총장 약력 (태권도 공인 9단)

▲ 한국체대 체육학과 졸업, 동국대 체육학 석사, 한국체대 이학박사, 고려대 철학박사 ▲ 전 용인대·한국체대 교수 ▲ 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장ㆍ도장위원장,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학술교류위원 ▲ 전 대한체육회 이사 ▲ 전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감독 역임 ▲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상임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한국유엔봉사단 부총재

▶ 수상: 대한체육회 체육연구상 (2005),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 (2007), 캄보디아 왕실대훈장 (2022), 미국 대통령 최고봉사상 (2022),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2025) 등

▶ 저서: '태권도 탐구논리'외 25권

▶ 연구논문: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외 2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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