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동거한다며. 애인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1984년 7월 어느 날, 감독이 느닷없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제대를 6개월 앞두고 있었다.

안용규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안용규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무슨 소리예요? 군인이 애인이 어디 있어요.”

감독은 건드리면 발끈하는 내 성미를 아는지라 일부러 그렇게 접근했다.

애인이 없으면 여자 하나를 소개할 테니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다.

애인이 있으면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였다. A급 여자라고 했다. A급에 대등할 만하니 그에 어울리는 여자를 소개한다는 말로 들을 법도 한데, 나는 우선 반감부터 생겼다.

그럼 나는 C급이란 말인가? 어떤 여자인지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공부하느라 늦게 제대하는 나를 두고 벌써부터 부모님은 결혼을 시켜야 한다며 여기저기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지금이야 결혼이 선택 사항이지만 당시에는 필수였고, 27살이면 꽉 찬 혼기였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생각도 못하던 때였다. 하루빨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감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여자를 칭찬했다. 얼굴이 예쁘고 아주 참하다고 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리다고 했다. ‘인간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유학 준비 중인 여자를 왜 소개하느냐고 묻자 그의 아버지가 괜찮은 남자가있으면 결혼시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업에 근무를 하고 집안도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 여러 말을 했지만 나는 한 가지에 꽂혀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평소 나를 눈여겨봤던 감독이 사내 기질이 다분하고 직장도 생겼으니 가장 노릇은 어느 정도 할 거로 생각하고 그와도 연이 있는 지인의 딸을 소개했던 것이다.

태권도 (그림=고우영 화백) / 뉴스후플러스
태권도 (그림=고우영 화백) / 뉴스후플러스

결혼 후 어느 날, 앨범을 뒤적이다 우연히 태권도복 차림의 아내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깜짝 놀라 태권도를 한 적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동안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태권도 전문가에게 그 정도는 얘깃거리가 못 된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인즉슨, 내게 아내를 소개한 감독이 서울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유일한 여자 관원이었고, 그 바람에 장인어른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돼서 그의 딸을 내게 소개했던 것이다. 아내는 당시 감독을 큰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훗날 인덕공고 시절 아내 명의로 태권도장을 냈던 것도 본인이 태권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아내는 1971년 국기원이 설립되기 이전 한성고등학교에서 초단을 딴 빠른 단증 번호를 가진 태권도인이었다. 나는 한성고등학교에서 승단한 여성태권도인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진도 못 봤지만 소개를 거부하지 않은 건 일반적인 남자로서 여자에 관한 관심 정도였다. 아내는 나와 함께 사는 동안 예기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온실 안 나약함을 벗고 나중에는 나보다 더 강한 여자가 되었지만, 그리고 그녀가 A급 여자라는 것을 두고두고 인정하게 되었지만, 당시는 그저 순종적인, 남자나 부모님이 선호할만한 정말 참한 여자였다.

▣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총장 약력 (태권도 공인 9단)

▲ 한국체대 체육학과 졸업, 동국대 체육학 석사, 한국체대 이학박사, 고려대 철학박사 ▲ 전 용인대·한국체대 교수 ▲ 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장ㆍ도장위원장,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학술교류위원 ▲ 전 대한체육회 이사 ▲ 전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감독 역임 ▲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상임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한국유엔봉사단 부총재

▶ 수상: 대한체육회 체육연구상 (2005),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 (2007), 캄보디아 왕실대훈장 (2022), 미국 대통령 최고봉사상 (2022),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2025) 등

▶ 저서: '태권도 탐구논리'외 25권

▶ 연구논문: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외 2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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