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정식으로 용인대 교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도 대학교수가 나왔다고 무척 좋아했다. 그 기념으로 흑백 텔레비전을 컬러 텔레비전으로 바꿨다.
나 역시 인덕공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건 아쉽지만 오래전부터 원했던 자리이기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야 내가 꿈꾸던 문무를 겸비한 교수가 되어 역시 문무를 갖추도록 제자를 기르게 되었다는 자긍심에 출근이 즐거웠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를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모든 교수가 용인대 출신이었고, 한국체대 출신은 내가 유일했다.
학생들은 이론 수업을 듣지 않고 운동만으로 학점을 줄 것을 요구했다. 운동 실적도 있고, 따로 공부할 시간도 적으니 학점을 달라는 것이다.
용인대에서는 그동안 관행처럼 운동만 해도 학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학생들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론과 실기를 겸한 교수였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고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점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당시 태권도학과 교수로 체육원리라는 과목과 태권도 실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체육원리는 전공과목으로 학점을 따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다. 교수들과도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결정은 그동안 자신들이 주었던 학점이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내게 냉담했다.
운동선수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삶의 지표였다. 운동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반드시 깨고 싶었다. “명색이 대학졸업생인데 나중에 자식 앞에서 이름도 한자로 쓰지 못하고 간단한 공통수학도 못 풀면 말이 안 된다. 그 이유를 운동선수라서 그렇다고 하면 역시 운동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모두 뒤돌아 앉아 있었다. 수업 거부였다. 이유를 물으니 몇가지 이유를 대는데 기가 막혔다. 태권도학과 교수로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문제, 교수 임용 시 높은 교수에게 자동차를 헌납하고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것, 아무튼 수업 거부 이유가 7가지나 되었다. 해서 태권도장은 아내가 운영하는 것이고, 차를 헌납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헌납했다는 교수를 찾아가 받아온 차 할부 영수증까지 보여주며 조목조목 7가지 모두를 해명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크게 소리쳤다. “야, 그건 다 핑계잖아. 솔직히 우리 용인대 출신도 많은데 라이벌인 한국체대 출신 교수에게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거잖아.” 학생들이 일제히 동조한다는 뜻으로 박수를 치며 “우-우” 소리쳤다.
나는 학생들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내가 수업을 거부할 테니 훌륭한 용인대 출신 교수를 데려다 수업을 들으라고 했다. 단 분명하게 해 둘 게 있다며 사실을 따져보자고 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나 학생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체대는 여러분의 라이벌이 아냐. 라이벌이라 함은 실력이 비슷할 때 쓰는 말인데 여러분은 가군으로 한국체대에 시험 봤다가 떨어지고, 경희대 봤다가 떨어지고, 한양대 봤다 떨어져서 여기에 온 거 아닙니까? 우상으로 여기거나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면 말이 되지만 라이벌은 아니라는 겁니다.” 학생들 눈에 불이 켜졌다. 아픈 정곡이 찔린 것이다.
학생들에게 내가 수업을 거부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곧 바로 총장실로 갔다. 총장은 학과를 옮기라고 했다. 그 다음 해부터 체육학과로 옮겨 수업을 이어나갔다. 체육학과 1회 학생들의 지도교수로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했다. 용인대 교수 시절 아마추어 축구단을 만들었다.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대거 참여했고, 그 바람에 교수들과 학생들과도 관계를 회복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 이후론 7년 동안 함께 족구도 하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한국대학태권도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는 동안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용인대 태권도 발전에도 일면 이바지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코치가 된 것도 그 시기였다.
용인대학교 면접 당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반드시 취득하라는 것이었다. “당신 박사 공부를 할 거요, 안 할 거요? 박사 취득 못하면 임용을 취소할 거요.” 총장은 대놓고 내게 물었다.
반드시 취득하겠다고 하고 바로 모교인 한국체육대학교에 박사과정 등록을 했다. 그러나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수업을 모두 마쳐야 하는 것은 물론 종합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외국어와 제2외국어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이 어려운 공부를 학교에 근무하면서 해나가는 데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한 지 4년 반만인 1994년에 ‘중등학교 체육과 목표 비교를 통한 체육교육의 발전 방향 연구’라는 논문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우리 집안에서도 박사가 나왔다며 무척 좋아했다. 지금도 박사과정은 힘들지만, 그때 비하면 박사가 많은 편이다. 옛날 사람들은 박사를 공부로 성공한 사람 중 최고 높은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도 기뻐했다. 출퇴근 먼 길 오가며 일하랴 공부하랴 노고가 많았다며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었다.
문제는 학위수여식 날이었다. 가족과 지인 몇이 올 줄 알았는 데 무려 100명이나 온 것이다. 올림픽파크텔 뷔페식당으로 초대를 했는데 점심 값이 문제였다. 당시 1인당 식사비가 3만4천 원이었는데 340만 원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예상하고 준비한 돈은 최대 100만 원 정도였다. 교수 급여가 높은 편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당당하게 형에게 대신 내주라고 했다. 박사를 둔 아버지의 자부심에서 나온 명령이었다. 그때 부족한 돈을 형이 냈다. 과거 섭섭했던 점을 모두 털어버리고 그날은 형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 제7대 한국체육대학교 안용규 총장 약력 (태권도 공인 9단)
▲ 한국체대 체육학과 졸업, 동국대 체육학 석사, 한국체대 이학박사, 고려대 철학박사 ▲ 전 용인대·한국체대 교수 ▲ 전 대한태권도협회 연구위원장ㆍ도장위원장, 국기원 태권도연구소 학술교류위원 ▲ 전 대한체육회 이사 ▲ 전 대한민국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감독 역임 ▲ 세계장애인태권도연맹 상임고문,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고문, 한국유엔봉사단 부총재
▶ 수상: 대한체육회 체육연구상 (2005), 대한민국 체육훈장 백마장 (2007), 캄보디아 왕실대훈장 (2022), 미국 대통령 최고봉사상 (2022),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2025) 등
▶ 저서: '태권도 탐구논리'외 25권
▶ 연구논문: ‘태권도 역사와 정신 연구’외 2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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