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경 경기도 내 모든 소방서는 도 민방위국 소방행정과(4급 과장)에서 종합 관리하는 도의 기관이었다. 조직, 인사, 예산을 소방행정과에서 지원했다. 30년이 지난 2019년에는 1급 소방본부장에 3급 간부가 5~6명 정도 되고 소방관 정원이 일반직 도청 공무원보다 많았다.

경기도청과 공공기관에서 45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9년 1월 말에 퇴직한 이강석 작가​. 전 경기 남양주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경기도청과 공공기관에서 45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9년 1월 말에 퇴직한 이강석 작가​. 전 경기 남양주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소방관은 시군지역에 근무해도 경기도청 소속 공무원이다.

당시 경기도 내 소방서 근무 소방관은 8,900명이었으며 2019년에 911명을 추가 채용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119 불자동차라 해서 불이 나면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려가는 것이 소방서 기능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그 분야가 확장되어서 모든 사건·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소방관이 되었다.

화재 현장에 소방관이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통사고, 건물 붕괴, 수해, 한해, 산불 등 자연재해, 재난 등 모든 사건·사고의 현장에 소방관이 출동한다.

소방과 防護(방호)를 설명하는 참 좋은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난다. 소방은 불이 났을 때 달려가서 진화하는 것이다. 반면 방호는 불이 나지 않도록 사전에 취약지를 점검하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왱왱거리는 소방차가 오갈 때 소방공무원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태양이 만물의 근원이고 지구 에너지의 원천인 것을 잊고 살듯이 불이 나지 않는데 왜 소방관을 증원하는가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중요성은 늘 알아야 한다. 불이 나도 필요하고 불이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데도 소방 행정은 중요하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을 잡고 그 불 속으로 뛰어들어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는 소방관들을 보면 우리는 감동한다. 소방관은 어린이들의 미래 직업 5순위이다.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국인 것이다.

공보실에 근무하던 7급 공무원 시절에 소방과에 들러서 눈썹 진한 차석으로부터 소방관서 신설 계획이 담긴 자료를 받았다. 우연히 다른 루트로 알게 된 소방관서 신설 계획은 그날까지도 대외비였다.

곧 국장님 결재가 나면 공식적인 보도 자료로 제공하겠다고 하므로 미리 보도 자료를 써두면 좋겠으니, 사본을 달라고 했다. 복사본을 가져와 사무실에서 보도 자료를 작성하여 타자를 부탁하였는데, 타자를 담당하는 직원이 타자 후에 곧바로 기자실에 배포하고 말았다.

다음날 조간과 석간신문에 당시 표현대로 '대문짝, 신문짝'만하게 기사가 났다. 지방지에 난 것은 물론이고 중앙지, 중앙 경제지, 방송 자막 뉴스에도 경기도의 소방관서 신설 계획이 말 그대로 '대서특필(大書特筆')된 것이다. 소방과에는 불이 나지도 않았고, 재난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화재 발생 이상의 긴급 비상이 걸렸다.

이 사실을 국장님이 아시고 怒發大發(노발대발)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내실 일이 아니었다. 칭찬하고 점심에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당시의 간부들은 자존심이 높았다.

자신이 결재하기도 전에 언론에 나갔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담당자가 급히 만나자 해서 소방과로 달려갔다. 담당자로서 공보실 직원을 믿고 자료를 준 것이 잘못이고 공보실 직원은 약속을 어겼으니 미안한 일이었다. 이 정도 선에서 대처 방안을 조율했다. 사실 이 사건은 이른바 취재원과 언론인이 엠바고를 깬 것과 비슷한 결과였다.

엠바고(embargo)의 본래 뜻은 '선박의 억류 혹은 통상 금지'이나, 언론에서는 '어떤 뉴스 기사를 일정 시간까지 그 보도를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엠바고란 '보도 시점'을 정하고 자료를 미리 배포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인 중에는 '엠바고는 깨라고 있는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고 그래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약속을 어긴 잘못이 있으므로 소방과 차석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 공보실 직원이 어깨너머로 보고 기사를 쓴 것이라고 변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장님이 부르시면 가서 사과를 드리기로 했다.

당시 국장님은 성격이 급해서 화가 나면 등짝을 때릴 수도 있으니 한 대는 맞아주고 계속 때리려 하면 책상 아래로 숨으라는 위험 대비 수칙도 알려주었다. 역시 안전제일 소방 행정가이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 졸였지만 무사하게 지나갔다. 아마도 국장님은 좋은 기사가 난 것에 대해 담당자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신 것 같았다. 훗날 고위직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 기억이 있다.

신문사 편집국 간부들은 독자에게 관심을 둔다. 공무원의 잘못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리고 국장님은 당시 대략 15곳 언론사에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관서를 신설한다는 언론 기사를 보시고 마음 포근한 마음을 간직하셨을 것이다.

119구급대 출동사진(사진=연합뉴스제공)
119구급대 출동사진(사진=연합뉴스제공)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국장님 결재가 나면서 특정 언론사에만 특종으로 제공했다면 다른 언론사의 제목이 작아지고 4단 기사가 1단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언론사의 비난이 국장에게 쏠렸을 것이고 그러면 담당자는 반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언론은 늘 독자를 의식하여 기사를 취재하고 편집하여 보도한다.

예를 들어 성남 판교 지역의 공원 조성계획이 중앙지 수도권판에 보도된다. 지방지에서는 다른 도시계획에 포함하여 보도하는데 중앙지가 특정 공원을 도면까지 그려 넣으며 크게 보도하는 데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나중에 파악한 바는 그 지역에 중앙지의 수도권판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앙지 구독자가 원하는 기사는 비싼 아파트 주변에 공원 등 토지이용계획, 도로 개설 등 민생 현안이 가장 중요한 기사였다. 중앙지가 도지사, 시장·군수의 동정을 보도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공보실 공무원이라면 파악해야 한다. 이는 공보, 홍보부서 근무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다.

그래서 홍보 담당자는 늘 '선택과 집중'이라는 고민을 한다. 기관장의 인사말이 나가야 완벽한 보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이 원하는 것은 독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일이다. 따라서 언론사 하나에 집중해서 4단 기사로 나갈 것인가, 다수의 언론에 2단 기사로 보도할 것인가의 고민은 홍보부서의 정책적 결정인 것이지 중앙지 기자의 고민은 아니다.

우리는 늘 이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답은 없지만 보편타당한 방법은 다수의 언론사에 동시에 풀 기사로 내보내는 것이다. 특정사와 거래를 시작하면 더 많은 타사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오늘 한번 크게 보도하고 4일을 밋밋하게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홍보성 기사는 그렇다 하고 우리는 항상 비판 기사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 좋은 기사를 한 매체에 크게 보도한 것은 차가운 얼음물 한잔 마시고 시원함을 느끼는 것일 뿐 이후 언론 홍보에 대한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미지근한 물을 수시로 마시는 것이 갈증을 풀어내는 보편타당한 방법인 것이다.

더구나 A 기자의 취재를 막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고 그와 친한 C 기자가 조금 다른 각도로 취재한다. 결국 언론인의 눈·코·귀를 막지는 못하며 예민한 촉각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다. 결국 언론인과의 소통 속 화두는 정직함이다. 숨김이 없어야 한다.

숨기고 싶으면 사실을 말하고 'off the record'를 요청해야 한다.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말해주는 것이다. 다만 'off the record'는 상대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있을 때 써야 한다. 어떤 언론인은 'off the record' 역시 엠바고처럼 깨는 맛에 기자를 한다고도 하니까.

당시에 소방관서 신설에 관한 기사와 관련한 사건으로 비 온 뒤의 땅처럼 마음이 조금 굳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새가슴에서 돌 가슴으로 마음을 바꾸려 노력했다. 자신감 있는 공보실 직원이 되고자 했다. 언론이라는 무대는 늘 경매사처럼 부침이 있고 복싱장 4각의 링처럼 승패가 갈리는 사건·사고의 현장 리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훗날 국회의원을 하신 혁신적인 2003년도 경기도청 차명진 공보관께서 사건·사고가 없으면 '금단현상'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20년 전 좋은 기사를 언론에 팡팡 터트리고도 국장님의 진노로 마음 졸였던 자신의 약한 모습을 회고하면서 이제서야 작은 미소를 머금어 본다.

▣이강석 작가 프로필

▲1958년 경기도 화성시 출생 ▲경기대학교행정대학원(석사) ▲공무원·공직에 45년간근무(경기도청, 화성·동두천·오산·남양주 시청 등) ▲문교부장관·내무부장관 표창, 대통령표창, 홍조근정훈장 ▲일반행정사, 사회복지사, 효지도사, 인성교육지도사 ▲출간: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2017)’‘홍보 이야기_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2020)’‘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2020)’‘여행의 여유(2023)’‘경기도 화성시 비봉노인대학(202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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