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이나 기업에서 언론에 내놓는 보도자료는 언론 보도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도자료'이다. 혹시 보도자료를 잘 쓰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소비, 허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전에서 보면 제목부터 소제목, 본문 내용이 기사문을 전제로 작성되어 배포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방식이 정도(正道), 지름길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있다.
보도자료는 한정식집에서 접시에 담아 소스로 그림을 그려 멋을 낸 후 식탁 위에 따끈하게 올려진 요리가 아니라, 농산물시장에서 구매하여 주방에 방금 도착한 아주 신선한 식재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와 배추와 파, 마늘, 붉은 고추 등이 도착하면 아마도 보통의 주방장은 열무김치, 배추김치, 겉절이 등을 상상할 것이다.
그런데 상상력이 앞서고 창의력이 좋은 주방장이라면 이 재료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까를 생각할 것이다. 즉, 주어진 재료에서 일반적인 음식을 상상하는 주방장이 있고 어떤 재료를 특화해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겠다는 조리장도 있을 것이다.
언론인도, 기자도 하나의 사건이나 행사, 모임을 보면 시대상과 언론사의 사시 등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자신이 취할 기사의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 취재원 측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삶고 볶아서 하나의 요리, 음식으로 완성하여 제공하면 언론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편하고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한다는 생각으로 기사문 형식의 '완성된 보도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인들의 시각과 능력을 바탕으로 5가지 재료를 활용하여 5가지 이상의 기사를 창조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다. 우리가 미리 만들어 한 개의 음식으로 제공하면 언론인들의 가사 창의력이 말살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는 보도자료 앞머리에 기관장의 연설문 핵심을 먼저 올리고 행사의 성격과 추진 이유는 마지막에 넣는 실수를 자주 범해왔다. 기자와 독자들이 원하는 보도 내용은 행사의 성격과 그것에서 자신이 얻을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높다. 기관장의 연설은 기사 말미의 참고 자료인 것이다.
기사와 논문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논문은 일반적인 상황을 제시한 후 자신이 주장하는 최종의 의견을 마지막 결론에서 제시하지만, 기사는 제목에서 핵심을 말하고 첫 문장(리드 문)에서 그 시책의 전모를 밝히게 된다. 다음 문장에서 설명을 보충하고 그다음에 추가로 알려준다.
독자는 제목을 보고 사건을 이해할 것이고 궁금하면 첫 문장을 읽고 그래도 부족하면 다음 문장으로 눈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공무원들은 기관장의 말씀을 앞에 싣고 싶어 하고 기자는 마지막으로 돌리거나 아예 빼버리곤 한다.
언론인과 공보실 공무원과의 고민이 충돌하는 현상을 여기에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언론인은 '기사를 써주었다'라고 하면 공보실 공무원이 원하는 대로 써서 편집부에 넘겼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자가 정말로 마음먹고 기사를 썼다면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을 것이고 이해당사자의 주장을 싣고 행정공무원의 비판에 대한 해명을 싣게 된다. 그래서 관계자에게 여러 번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아 소명을 듣지 못했다는 내용을 기사문에 올리게 보게 된다.
이제 우리의 보도자료는 연락처와 담당자 정도를 표기하고 기관의 방침 결재문, 행사에 대한 계획서 사본을 첨부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식당 주방에 재료가 들어오듯이 공무원이 기획하고 기관장의 결재를 받은 문서를 원안대로 출입 기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공무원의 시각에서 요리조리 쿠킹하지 말고 기자의 관점에서 사업을 평가하고 행사의 의미를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언론인을 활용하는' 보도 전략이 필요하다.
다만 행정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하고 싶은 홍보 이야기는 하고 싶은 대로 작성하여 배부하되 관련 자료를 충분히 첨부하는 것도 다양한 언론인의 기사 작성 기법을 더 많이 활용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래서 늘 보도자료는 식재료가 되기도 하고 요리가 되기도 한다. 식재료는 기자들이 다양한 기사로 발전시킬 수 있지만 요리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단순한 배달 음식일 뿐이다.
주방장실 옆 홀에서 먹는 탕수육과 오토바이로 달려와 경비 문 2곳을 어렵게 통과한 후 아파트 15층에 도착한 짬뽕의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강석 작가 프로필
▲1958년 경기도 화성시 출생 ▲경기대학교행정대학원(석사) ▲공무원·공직에 45년간근무(경기도청, 화성·동두천·오산·남양주 시청 등) ▲문교부장관·내무부장관 표창, 대통령표창, 홍조근정훈장 ▲일반행정사, 사회복지사, 효지도사, 인성교육지도사 ▲출간: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2017)’‘홍보 이야기_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2020)’‘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2020)’‘여행의 여유(2023)’‘경기도 화성시 비봉노인대학(202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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