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하고 저렴한 과일과 채소를 구입하기 위해 농산물도매시장에 자주 간다. 어느 해 추석 연휴에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주차 티켓을 뽑으려 하는데 붉은 글씨로 "사용 금지"라고 티켓 출구를 막아 놓았다.

경기도청과 공공기관에서 45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9년 1월 말에 퇴직한 이강석 작가​. 전 경기 남양주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경기도청과 공공기관에서 45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19년 1월 말에 퇴직한 이강석 작가​. 전 경기 남양주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이 티켓을 뽑지 말라는 의미로 보였다. 그러면 사용 금지가 아니라 "사용 금지"라 쓰고 "연휴 기간에는 주차요금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읽으라는 의미인 것이다.

다음번에는 차단기를 하늘 높이 들고 있으므로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표 뽑는 곳"이라는 문패가 선명하기에 여러 번 터치를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날 역시 "표 뽑는 곳"이라 쓰고 손님들에게는 "공사 중이라 무료이오니 통과하세요"라고 읽으라 하는 것이다.

공보실, 홍보부 직원들은 언론에 자랑할 것이 없어서 목이 타는데, 행정과와 관리과 직원들은 황금 같은 홍보의 기회를 날리고 있다.

깊은 산속에 사는 부부가 있었다. 신랑이 금덩이로 숯가마 아궁이를 만들었다. 읍내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금을 알아보고 잘게 쪼개어 대장간에 팔아 큰 수입을 챙겼다. 숯가마 신랑은 금을 아는 아내가 아니었으면 황금 같은 기회를 잃어버릴 뻔하였다.

마찬가지로 사업 부서는 공사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기관, 회사를 홍보할 기회가 있는 줄도 모른다. 1998년 6월 16일에 정주영 회장이 방북 소 떼 500마리를 이끌고 휴전선을 넘을 때 트럭마다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소 운반 차량"이라고 적었다.

현대그룹 홍보실에서 사전에 통일부와 얼마나 많은 토론과 주장 끝에 이룩한 성과이겠는가? 이 플래카드 문구가 한 번에 완성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사진=양평군)/뉴스후플러스
경기도 양평 용문사(사진=양평군)/뉴스후플러스

우리 기관, 우리 회사 여러 곳에 홍보의 공간이 있지만 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야 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용문사에는 1,00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더 높은 크기의 피뢰침이 서 있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사진=양평군)/뉴스후플러스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사진=양평군)/뉴스후플러스

설치 주체가 양평군이든 문화재관리청이든 용문사이든 관계없이 참으로 좋은 홍보의 탑이 텅 비어 있다.

오산시 죽미령고개는 6.25전쟁 때 소련제 탱크와 미국 맥아더 장군 휘하의 스미스 부대가 큰 전투를 치른 곳이다. 1950년 7월 5일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미스 특임부대가 북한군 전차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미군 181명이 전사하였다.

UN군의 큰 희생으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고 우방에서 참전하고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군 전우들은 전후에 돌 540개를 모아서 치열했던 전투 현장에 초전비를 세웠고, 탑에 올라간 540개의 돌은 스미스 부대원 540명을 의미했다.

경기 오산의 유엔군 초전비(初戰碑)_(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경기 오산의 유엔군 초전비(初戰碑)_(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이런 스토리를 간직한 이곳은 오산시를 전국에 홍보할 수 있는 명소이다. 미군이 세운 초전비와 대한민국에서 건립한 UN군 초전비는 국도 1호선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도로 위로 인도를 세우고 그 인도에 초전비 현장임을 국민과 외국인에게도 알리는 홍보 전략을 제안한다.

경기 남양주시에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신 홍유릉이 있고 인근 구리시에는 태조 이성계를 모신 건원릉이 있다. 세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의 역사는 이성계의 건원릉에서 출발하여 고종황제의 홍릉으로 500년을 이룩했다.

홍유릉은 고종 황제, 순종 황제, 명성황후가 모셔졌 있다. 그 인근에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의 묘역이 있다. 그 자리에 조선 500년 왕릉을 미니어처로 만들고 초중고생의 역사 현장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스마트폰에 연결된 앱을 열고 미니어처 왕릉앞에 서면 당대의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마도 건원릉의 억새풀 이야기, 세종대왕이 경기도 여주에 이장된 사연, 융건릉과 효도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다.

덕혜옹주 묘(사진=남양주시 SNS)/뉴스후플러스
덕혜옹주 묘(사진=남양주시 SNS)/뉴스후플러스

2016년 8월에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되었다. 간부 공무원들이 영화 관람기를 모아서 영화감독과 배우에게 보냈다. 조선왕릉 관리사무소가 동참하여 덕혜옹주 묘역 앞에서 조선의 왕릉 역사를 설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2017년 봄에 그동안 비공개 지역이었던 덕혜옹주와 의친왕의 묘역이 개방되었다. 쉽게 열리지 않는 문재재관리위원회의에서 개방을 결정하게 한 힘은 남양주시청 공무원과 시민과 언론이었다. 공무원이 노력하면 긍정의 역사로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언론 홍보를 통해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 언론 홍보는 자화자찬 자랑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자랑 자료가 아니라 알권리를 키우는 의무이행이다. 이제 우리 홍보맨들은 우리의 홍보 노력이 자랑이 아니라 임무, 의무, 사명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강석 작가 프로필

▲1958년 경기도 화성시 출생 ▲경기대학교행정대학원(석사) ▲공무원·공직에 45년간근무(경기도청, 화성·동두천·오산·남양주 시청 등) ▲문교부장관·내무부장관 표창, 대통령표창, 홍조근정훈장 ▲일반행정사, 사회복지사, 효지도사, 인성교육지도사 ▲출간: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2017)’‘홍보 이야기_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2020)’‘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2020)’‘여행의 여유(2023)’‘경기도 화성시 비봉노인대학(2024)’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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