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가던 중 낯선 사람으로부터 “혹시 도(道)를 아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때로는 얼굴이 아주 선하게 생겼다면서 접근하기도 한다. 포교(布敎) 방법의 일종이다.
‘도’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깨달음’의 경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聖人)도 아닌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 깨달음의 경지를 맛볼 수 있을까?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밤이면 하루에 한 일을 점검하고, 한 달이 끝날 때면 한 달에 한 일을 점검하고, 한 해가 끝날 때면 한 해 동안 한 일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해가 되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잘하고 잘못한 것과 편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마음속에 묵묵히 깨달은 것이 많았다고 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종교적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거창하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도 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깨달음의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나도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의 희열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졸업생들도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도서관 맨 위층 대형 열람실 창가 자리는 대부분이 장수 고시생들 고정 좌석이었다. 아침일찍 도서관에 도착하여야만 차지할 수 있는 아늑하기도 하고 경치도 좋은 공간이었다.
나는 장수 고시생들과 경쟁을 벌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 좋은 자리를 잡았다. 최소한 하루 동안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느닷없이 나타나 장수 고시생들이 장기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좌석을 차지하게 되니, 뜻하지 않게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장수 고시생들 사이에는 암암리에 통용되던 도서관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좌석 영역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학과 친구들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 현관 앞에서 한 친구로부터 소규모 열람실 사용권 2장을 얻을 수 있었다. 사용권에는 열람실 및 좌석 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 사용권만 있으면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고 고정 좌석에서 6개월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소규모 열람실 좌석을 고시생들이 점령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열람실을 올라가려던 참에 운명적으로 사법고시를 공부하던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2장의 소규모 열람실 사용권이 있었던 터라, 별생각 없이 사용권 중 하나를 그 친구에게 주었다. 너무 착한 나.
우리는 함께 해당 열람실로 올라갔다. 내 손에 쥐어진 좌석 번호와 내 친구가 가지고 간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나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이럴 수가! 내 친구의 좌석은 열람실 제일 구석에 책상 하나가 창가에 배치된 곳이었다. 내가 가장 바라던 천혜(天惠)의 조건이었다. 조용할 뿐만 아니라 높은 열람실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경치는 눈의 피로를 씻어 줄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내 좌석은 열람실의 출입문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나는 책상에 가방을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친구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대놓고 말하기는 좀 애매하여, “나는 성격이 예민하고 너는 성격이 털털하니 자리를 좀 바꾸어 주면 어떨지?”라는 취지였다. 내 친구는 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야~~, 여기 자리 좋네.” 하면서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어 책상 위에 정리하고 있었다.
속절없이 내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풀었다. ‘그래, 한번 부딪쳐보자. 6개월이 보장되는 고정 좌석이 아닌가’ 내 좌석은 출입문 바로 앞이라 이용자가 30명이 되지도 않음에도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출입문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나갔던 사람이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무슨 볼일이 저렇게 많은지. 공부는 언제 할 것인지. 저쪽 사람은 휴대폰을 들고 급히 밖으로 나가고 있다. 고시생이 휴대폰을 사용하면 공부가 되겠는가? 출입문은 왜 이리 세게 닫고 나가는지 문짝 부서지겠다. 출입문 틈새로 바람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지. 먼지도 같이 들어 오려나?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다음 날도 똑같이 지나갔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청각이 발달해 갔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꼬박 1주일 동안 학습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건성으로 넘긴 내용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1주일을 그냥 날렸다.
내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자리를 좀 바꾸어 주지 그랬는가. 가끔씩 내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빼내어 보았더니 정신없이 공부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 친구가 미워졌다. 이게 다 누가 얻어 준 좌석인데. ‘좌석을 얻어 온 놈은 이러고 앉아 있고, 엉겁결에 좌석을 얻은 놈은 열공 중이라니’ 급기야, 좌석 번호를 확인한 다음 내가 좋은 좌석을 확보하고 나머지 좌석을 내 친구에게 주지 않은 경솔한 나의 행동을 자책하였다. 바보같이!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괴로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밤. 드디어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날도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친구의 얼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나의 경솔함을 자책하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어두컴컴한 자취방 천정에 한자 문구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불복(不福)이면 불구(不求)하고, 유복(有福)이면 필득(必得)하라!”, “내 복이 아니면 구하지 말고, 내 복이라면 반드시 획득하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창가 좌석이 내 것이라면 내가 반드시 확보했어야 한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집착하면 안 된다. 현 상황에서 창가 좌석이 내 것인가? 아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좌석은 내 친구에게로 넘어갔다. 이미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좌석에 왜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가? 미련 때문인가? 욕심 때문인가? 처음에는 누구의 좌석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므로 내가 구해서는 안 된다. ‘그래, 내가 그 좌석을 버리자! 그 좌석을 잊어버리자!’
순간 나는 뭔지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 아, 내가 10여 일 동안 왜 그렇게 어리석게 그 좌석에 집착을 했을까?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니 세상이 나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가 있을까! 이것이 바로 생활 속의 작은 깨달음이었던것이다!
다음 날 나는 미련 없이 소규모 열람실 좌석을 버렸다. 다시 일반 열람실에서 장수 고시생들과 경쟁하였다. 마음도 편안해졌고 공부하는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박찬록 변호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수료 ▲2001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용.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법무부와 대검의 기획부서에서 검사로 근무하였고 상주지청장, 부산서부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수원지검 1차장 등 역임. 2024년 6월11일 서울고검 공판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 ▲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