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서울중앙지검에서 3년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는 법무부에서 평검사로서 2년간 근무한 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서울중앙지검으로 인사발령이 나는 것이 관례였다.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후 약 24년간 검사 생활을 역임한​​​​​​​ 박찬록 변호사_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후 약 24년간 검사 생활을 역임한 박찬록 변호사_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서울중앙지검은 평검사만 220여 명에다 간부들까지 합하면 총 260명 정도의 검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거대 검찰청이다.

검사로서는 꼭 한번 근무를 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검사로서 실적이 있어야 하고 인품도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검찰청 중의 검찰청, ‘꽃 중의 꽃’이다.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는 또 하나의 장점은 중요한 사건 수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안부, 특수부, 강력부, 금조부 등 인지부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사부에 근무하면서도 언론에 보도되는 묵직한 사건들을 수사할 기회가 생긴다. 중요한 사건을 수사하여 명성을 드높이려는 공명심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사건, 법리적으로 어려운 사건을 처리했을 때 자부심도 생기기 때문이다.

2010년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 배치되어 서울경찰청에서 송치되는 사건들을 주로 수사하게 되었다. 통상 전입하는 검사들은 바로 인지부서에 배치하지는 않는다. 미리 전입하여 열심히 일하였던 검사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낙하산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서울경찰청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은 소위 ‘기획수사(企劃搜査)’ 내지 ‘하명수사(下命搜査)’가 대부분이었다. 검찰청으로 말하면 인지부서에서 진행하는 수사와 동일하다. 수사가 설익은 상태에서 압수수색영장이나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고, 추가 입증이 필요함에도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범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것이 상당함에도 주변인들까지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방경찰청에는 수사 인력이 엄청나다. 한 팀이 달라붙어 1주일만 수사를 진행하면 수사기록 10권을 추가로 만들어 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수사지휘를 한 번 할 때마다 기록이 10권씩 늘어나 송치 단계에서는 몇십 권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 형사부는 서울경찰청을 지휘하는 관계로 오후 내내 기록을 실은 수레 소리로 요란하였다. 복도 저편에서 기록을 실은 수레바퀴 소리가 들려온다. 바퀴가 경쾌하게 구르는지 묵직하게 구르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저 수레는 기록이 최소 10권, 저 수레는 20권? 드디어 수레가 우리 검사실 앞에 당도한다. 나와 수사관은 고개를 숙인다. 10일 내지 20일 동안의 고생과 행복이 갈라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구속 사건 한 건을 배당받으면 구속 기간 10일 동안 사건처리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공범들이 많이 있고 범죄사실도 많으면 구속 기간을 20일까지 연장하여 사건에 대한 가르마를 타 주어야 했다. 누구는 구속기소를 하고, 누구는 불구속기소를, 누구는 약식 기소를 하고, 누구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주어야 한다. 중요한 사건 한 건을 처리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 형사부에서 1년간 근무하였다. 다른 형사부보다 사건 기록이 두껍고 복잡한 사건이 많아 힘든 점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중요한 사건들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검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울중앙지검 (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서울중앙지검 (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형사부 근무 후 특수부로 자리를 옮겨 2년 동안 근무하였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사 숫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인지부서로 이동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의 검사들이 인지부서 근무를 희망하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검찰청으로 인사이동을 받기보다 서울중앙지검 내에서 인지부서로 이동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도 돌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특수부로 보내 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어떤 분의 추천 혹은 도움으로 내가 특수부에 근무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특수부에서는 부정부패 사건을 담당하였다.

지방에 있는 검찰청에서 주로 조직폭력이나 강력사건을 담당하였고, 법무부에서는 기획을 접하다가 이제 특수검사로 ‘세탁’하게 된 것이다. 정치인 관련 사건도 처리하고 회사의 횡령이나 배임 사건도 처리하였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은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사건의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절차나 과정도 중요하다.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보기에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검찰에서는 증거에 따라 최선을 다해서 수사를 해도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좋지 못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어쩌면 수사기관의 운영이리라.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이 개시되면 몇 개월씩 계속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이른바 부정부패와 관련된 ‘게이트’에 대한 수사이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수사에 돌입하나 퇴근 시간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하루 종일 피의자나 참고인을 조사하고 압수수색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기 전까지는 수사를 멈출 수 없다. 결승선을 통과하여야 비로소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

중요 피의자나 참고인에 대해서는 주로 영상녹화실에서 조사를 하였다. 강압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검찰 조서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영상녹화실에서 아침에 출석한 피의자와 함께 밤늦게까지 보내기도 하였다. 잠시 쉴 겸 내실에서 저녁 9시 뉴스를 보았더니, 첫 번째 기사에 피의자가 아침 9시에 출석하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방송된 적도 있었다. 기분이 묘하였다.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부장님을 중심으로 석회(夕會, 저녁 회의)를 하였다. 오늘 한 수사내용을 공유하고 내일 진행할 수사에 대해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다. 우리 부장님은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없으면서도 검사들이 수사한 내용을 모두 알고 계셨다. 대단한 분이셨다. 내가 종래 10년간 배웠던 것을 1년 만에 배운 듯한 느낌이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가면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이다. 어떤 때는 짧은 시간에 폭탄주를 몇 잔 들이켜기도 하였다. 운이 나쁘면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라꾸라꾸 침대’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근무하는 2년은 참으로 바빴다. 보람도 있었고 스스로 검사로서 더 발전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은 분들과 한 팀이 되어 열심히 수사할 수 있었다. 이후, 2020년 9월 인사에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장에 부임하였다. 평검사 때와 부장 때 두 번에 걸쳐 서울중앙지검을 근무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영장전담검사 3명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되는 경찰 신청 영장 70% 정도를 담당하였고, 공판검사 5명과 함께 공소유지를 하였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인 소동파(蘇東坡)는 22살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인자함과 정의로움에 대해 논하기를,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그간 정의로움이 너무 지나친 면이 없는지 되돌아볼 뿐이다.

▣박찬록 변호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수료 ▲2001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용.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법무부와 대검의 기획부서에서 검사로 근무하였고 상주지청장, 부산서부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수원지검 1차장 등 역임. 2024년 6월11일 서울고검 공판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 ▲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저작권자 © 뉴스후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