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9일, 울산지검에 초임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책상에는 내 이름의 명패도 비치되어 있었다.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후 약 24년간 검사 생활을 역임한​​​​​​​ 박찬록 변호사_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후 약 24년간 검사 생활을 역임한 박찬록 변호사_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수사관인 계장 책상과 실무관인 여직원 책상이 마주 보고 놓여 있었다.

책상을 정리하는 동안 수사관과 실무관도 출근하여 반갑게 첫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형사부 검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검사실은 검사, 수사관과 실무관이 한 팀이 된다.
통상 수사관이나 실무관은 초임검사보다 나이나 경험이 많았으므로 초임검사로서는 그들로부터 배우고 익히면서 검사실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내가 검사로서 이 방의 주인이니 당신들은 잠자코 따라오시오.”라고 했다가는 그 검사실은 머지않아 좌초되고 만다. 선장은 배를 움직이는 선원들과 ‘원 팀(one team)’이 되어 선원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함께 해결해야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돌아오는 길에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출근 첫날 검사장님께 부임 신고를 한 후 검사실로 돌아오니 이미 책상 위에는 키 높이 정도 되게 사건 기록이 배당되어 있었다. ‘헉!’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연습 기록이 아니고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가급적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내가 처리해야 할 기록들이다.

첫날부터 너무 매정한 사람들이다. 그날부터 밤늦게까지 기록을 읽어 나갔다. 기록의 내용은 이해되었으나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검사실 수사관과 실무관에게 물어보고, 옆방 바로 위 선배 검사에게도 물어보았다.

검찰 깃발(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검찰 깃발(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검사 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무조건 물어보아야 한다. 지식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물어보지 않고 맞겠거니 하고 사건을 처리했다가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된다. 나만 문책을 받으면 그만이겠으나 윗분들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옆방에 있는 초임검사와 상의해 봤자 부싯돌끼리 부딪치는 격이니 불을 지피기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1+1이 2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를 산출할 수도 있다. 바로 선배 검사 방으로 달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형사부에서는 매일 사건이 배당된다.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은 물론 검찰에서 직접 접수받은 고소사건도 함께 배당된다. 하루를 열심히 일하는지 여부에 따라 처리하는 사건의 양은 달라지지만 배당은 다르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배당이 된다. 오늘 배당을 못 했으면 내일 두 배로 배당이 된다. 

검찰에는 사건처리 기한을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원칙적으로 고소 또는 고발사건을 수리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하여야 한다. 따라서 종래에는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이나 검찰에서 직접 고소장을 접수받은 사건을 3개월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3개월 초과 사건은 차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므로 3개월 초과 사건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했다.

현재는 실무상 4개월 초과, 6개월 초과 사건을 기준으로 장기미제를 정하고 있다.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만 신속하게 처리했다고 훌륭한 검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검사를 좋지 않은 의미로 ‘지게꾼 검사’라고 불렀다. 경찰에서 보내 주는 사건을 지게에 지고 그대로 법원에 갖다주는 검사를 말한다. 송치사건 중 피의자가 무엇을 숨기는지, 공범이 있는지, 피의자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 피해 회복이 되었는지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경찰이 보낸 그대로 사건을 처분해서는 안 된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진=연합뉴스)/뉴스후플러스

사건을 꼼꼼하게 검토하다 보면 의외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 단독범으로 송치된 피의자에 대해 공범이 존재하기도 한다. 1명, 1명 추가 범행을 ‘인지’하면서 수사를 하다가 보면 고구마 줄기에 고구마가 달려 오듯이 다수의 공범을 적발하기도 한다. 피의자가 피해자와 합의하였다고 하여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으나 합의서를 위조하여 구속을 피한 경우를 적발하여 다시 피의자를 구속하기도 한다. 교통사고에서 2주짜리의 간단한 진단서가 첨부되어 있는 사건을 확인해 보니 피해자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건을 바로잡을 검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경우는 검사실의 실적으로 체크가 된다. 그냥 얻은 실적이 아니라 수사관 및 실무관과 함께 밤늦도록 머리를 싸매고 수사한 결과다. 실적을 얻으려고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수사한것이 아니라, 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수사하는 것이 검사의 임무이다. 실적을 위한 수사라고 비난하지는 말길 바란다.

매월 말을 기준으로 검사실의 실적이 공개된다. 한 달간의 성적표를 받는 긴장되는 하루다. 검사의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실 전체 미제가 몇 건인지, 3개월이나 4개월, 6개월 초과 장기미제 사건이 몇 건인지 여부이다. 이 항목은 기본 사항으로 전체 미제 및 장기미제를 통제하지 못하면 낙제점을 받게 된다.

매달 혹은 격월마다 개최되는 검사회의에서 검사장이나 차장이 미흡한 검사실을 지적하게 되면 ‘고문관’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 매보다 무서운 벌이다. 기본이 갖추어진 다음에는 유리한 통계가 언급된다. 각 검사실에서 인지를 몇 건 하였는지, 인지를 통해 구속한 것은 몇 건인지, 경찰에서 불구속으로 송치되었지만, 검찰에서 추가 수사하여 직접 구속한 것은 몇 건인지, 허위 고소를 한 고소인을 무고로 인지한 것은 몇 건인지, 혹시 민원인으로부터 칭찬 편지를 받은 것이 있는지 등을 확인한다. 이 대목에서는 서로가 칭찬하고 들뜬 기분으로 회의에 임한다.

그러다가 다시 반전! 부정적인 요소를 검토한다. 기소한 사건 중 무죄가 몇 건인지, 혐의없음 처분을 하였으나 고소인이 고등검찰청에 항고한 사건이 몇 건인지, 항고된 사건 중 고등검찰청에서 재기수사를 명한 사건이 몇 건인지를 언급한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검사가 신이 아닌 이상 일정 수치의 무죄율, 항고율, 재기수사명령률을 피할 수 없음에도 모두가 죄인이다.

통상 매월 마지막 날, 또는 그다음 날은 각 부서 부장들과 검사들이 함께 회식을 한다. 한 달 중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날이다. 여건이 좋으면 소고기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어차피 부장님이 계산하는 것이니 맛이 좋은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실적이 좋건 나쁘건 모두가 한 달 동안 고생하였으니 소주 폭탄을 말아 단숨에 들이켠다. 때로는 부장님이 준비한 양주 폭탄을 맞기도 하였다. 술맛이 어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어느새 늦은 밤이 되기도 한다.

한때 유력인사들이 서로 자신이 폭탄주의 시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미국의 부두노동자로 일한 러시아 인부들이 “오늘 하루도 고생했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살아남았음을 감사한다.”는 의미로 폭탄주를 마시던 것이 기원이라고도 한다.

이제는 폭탄주 문화가 보편화되었다. 검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폭탄주를 즐겨 마신다. 예전에도 폭탄주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에도, 검찰 관계자들이 폭탄주를 마시고 불미스런 사고가 있었던 탓에 검사들이 폭탄주를 많이 먹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파레토의 법칙’을 유추하여, 어떤 생태학자는 개미 집단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개미 집단은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부 조직에는 파레토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검사실이 일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미제 더미에 허우적댈 뿐이다.

형사부 검사들은 하루 같은 한 달을, 한 달 같은 1년을 보내고 있다.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도 못한 채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을 미제(未濟)와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민생 관련 사건으로 밤을 지새운다.

반성하지 않는 피의자의 범죄를 밝혀내어 엄벌하도록 했던 일, 억울한 피의자의 누명을 벗겨 준 일, 힘겹게 살아가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도와준 일을 되새기며 또다시 힘을 낸다.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간다. 그것이 형사부 검사들의 일상이다

▣박찬록 변호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수료 ▲2001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용.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법무부와 대검의 기획부서에서 검사로 근무하였고 상주지청장, 부산서부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수원지검 1차장 등 역임. 2024년 6월11일 서울고검 공판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 ▲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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