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고 자동차나 값어치 있는 가전제품, 귀금속이 있을 리 없으니 동산(動産)으로서는 당연히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80년 가을, 우리 집에서 기르던 소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일이 있었다.
대형 사고를 친 날이어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와 소를 몰고 동네 서쪽에 있는 산으로 갔다.
이미 여러 명의 친구들도 와 있었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우리 집 소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함께 풀을 뜯었다. 소들은 마을 반대쪽 산에서 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마을 쪽에 있는 산에는 밤나무 농장이 있었다. 가을이 되어 이제 막 까맣게 익은 까칠 밤송이가 활짝 열려 알밤들이 땅에 떨어질 시기였다. 우리 집 소가 다른 집 소와 함께 풀을 잘 뜯어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알밤을 주우러 소들이 있는 반대편 산으로 이동하였다. 밤나무 주인 할아버지에게 걸리면 혼이 날 것이므로 눈에 띄지 않게 살금살금 다니면서 알밤을 양쪽 주머니에 가득 주웠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들키지도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친구들과 함께 소들이 풀을 뜯어 먹던 곳으로 갔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므로 각자 소를 몰고 집으로 가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 소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찾아보아도 우리 집 소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찾아보았으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날이 어두워져 친구들은 자기들의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였다. 친구들이 야속하게 느껴졌으나 사실 입장이 바뀌었으면 나라도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어둑해진 산속에서 홀로라는 생각에,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인 소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벌써 눈물이 글썽거렸다. 무서웠다. 날이 어두워도 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온 가족이 소를 찾으러 총출동하였다. 아버지와 중학생이던 작은형이 남포등을 들고 산으로 오셨다. 그제야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두운 산속에서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소를 불러도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소가 대답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시간은 점점 흘러 별들이 쏟아지는 깊은 밤이 되고야 말았다. 우리 집에 소를 팔았던 이웃 동네 집까지 찾아가 보았으나 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늦은 밤,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저녁을 먹지 못했다. 내가 워낙 큰 사고를 친 바람에 부모님은 나를 혼내시지도 않으셨다. 정말로 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 것이다. 내가 재산목록 1호인 소를 잃어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밤새 베갯잇이 흥건하도록 울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작은형과 함께 다시 산으로 가서 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 소는 그림자조차 없었다. 이제 학교를 갈 시간이 다 되었으나 집에 갈 수도 없었다.어머니께 학교에 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재산목록 1호를 잃어버린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당시 어머니는 눈병을 앓고 계셨다. 시골에 무슨 병원이 있고 무슨 안약이 있을까. 불편한 눈으로 밥을 지으시고 농사일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가 내가 소를 잃어버린 산의 마을 쪽을 유심히 바라다보고 계셨다. 한참을 지나 말씀하셨다. “저 산비탈 밭에 있는 누런 것이 소가 아니냐?” 나도 산비탈에 있는 밭쪽을 바라다보았다. 무엇인가 누런 것이 보였다.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미세한 움직임에 우리 집 소가 아닐까 하는 희망이 솟았다.
집에서 뛰쳐나와 건너편 산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밭으로 내달렸다. 누런 것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 그 누런 것이 우리 집 소가 아닌가! 소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굵은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를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다. 소도 얼마나 놀라고 기뻤던지 큰 몸짓으로 뭔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소를 잃어버린 전날로 돌아가 보자. 내가 밤을 줍기 위해 반대편 산으로 간 사이 우리 집 소는 더 맛있는 풀을 뜯기 위해 다른 소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더 외진 곳으로 이동하였다. 성가신 다른 소들을 피하여 조용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무리에서 벗어난 우리 집 소를 찾지 못하였고 날이 어두워지자 소도 은근히 겁이 났던 것일까?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지자 집까지 오겠다는 생각을 접고 마을이 있는 쪽 밭으로 넘어왔던 것일까?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보이고 때마침 맛있는 콩밭이 펼쳐져 있으니 내친김에 외박을 감행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 집 소는 이웃집 콩밭에서 밤새 콩을 뜯어 먹으면서도 무서운 밤을 보냈을 것이다. 자기를 제대로 돌봐 주지 않은 나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겁이 많은 소는 자신이 무서워하는 방향을 향하여 뿔을 곤두세우고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콩을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한눈에 봐도 배가 빵빵하였다.
소를 집에 데리고 와 외양간에 묶어 두었다. 그제야 어머니도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소는 물을 먹고 싶어 하였으나 물을 줄 수 없었다. 콩을 잔뜩 먹은 상태에서 물을 먹일 경우 콩이 불어서 위가 파열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늦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방을 메고 학교로 뛰어갔다. 내 인생에 있어 그렇게 기쁜 등굣길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인 소는 산에서 하룻밤 외박을 하였다. 나도 잊지 못할 1박 2일을 보내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집을 잘 찾아오는 소가 왜 집으로 오지 않고 외박을 하였는지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박찬록 변호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수료 ▲2001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용.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법무부와 대검의 기획부서에서 검사로 근무하였고 상주지청장, 부산서부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수원지검 1차장 등 역임. 2024년 6월11일 서울고검 공판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 ▲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