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고치기 어렵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중독이 된다. 혹자는 술이나 담배가 긴장된상태를 완화해 주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유용한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나는 1988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담배를 피우니 나도 담배를 배우게 된 것이다.
어른들은 술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하면서도 담배는 피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피우시면서.
예전에는 검사실에서 조사하면서도 담배를 피웠다. 당연히 사건관계인들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불공정한 처사라고? 세상이 그랬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의자 뒤편에 재떨이를 만들어 두기도 하였다. 그러니 검사실이라고 해서 뭐가다르겠는가?
검사실이 연기로 자욱하였다. 실무관은 검사와 수사관의 재떨이를 비우고 씻어 두는 것이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다. 피의자들은 꼭 자백하기 전에 담배를 한 대 달라고 했다. 대부분이 담배를 피운 뒤 자백하였다. 그런데 담배를 얻어 피우고도 자백을 하지 않는 피의자는 악질 중의 악질로 분류되었다. 담뱃값을 받고 싶었다.
2003년 지방에 있는 소규모 지청에 근무할 때였다. 우리 검사실은 수사관 2명과 실무관이 근무하였는데 공간은 꽤 넓었다. 나와 수사관 모두가 담배를 피우니 방에는 연기로 너구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1명을 조사하고 있고 선임 수사관은 피의자인 할아버지를 조사하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타이핑을 하다가 담뱃재가 떨어져 기록 틈 사이로 들어가면 후후 불면서 다시 타이핑을 하기도 하였다.
그때, 선임 수사관이 조사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수사관에게 정색하면서 말하였다. “자네 도대체 몇 살인가? 어른 앞에서 이렇게 담배를 피우나! 집이 어디인가?” 순간 나와 수사관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급히 각자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어? 이게 아닌데?
할아버지는 피의자이고 우리는 피의자를 조사하는 입장인데 난데없이 한 방을 먹었다.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비슷한 수사관이 지역 출신이라고 직감하고 시골의 정서를 반영하여 강력한 펀치를 날린 것이었다. 할아버지 지적이 맞는 말이니 우리는 꿀 먹은벙어리가 됐다.
다행히도 그 사건 이후 나는 사건관계인을 조사할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잘못된 줄 모르고 있었던 차에 강심장 할아버지가 깨우침을 주신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2006년 지방에 있는 검찰청에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검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검찰청이 교육대학교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식당에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테이블이 3개 정도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맛집이라고 하여 막내 ‘밥 총무’가 개발한 곳이었다.
당시 우리 부 차석이던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가 나오기 전에 담배 한 대를 빼 물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검사도 같이 담배를 피웠다. 좁은 식당에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였다. 음식 그릇 옆에 놓인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순간, 우리 뒷자리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나에게 가르치는 투로 말하였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합니까?” 당황하였다. 워낙 갑작스런 공격이라 “죄송합니다.”라면서 황급히 담배를 껐다. 후배도 담배를 껐다. 불의의 타격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식탁 위에 재떨이도 다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옛날 고집을 따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순응하고 적응해야 한다. 젊은 대학생의 눈에는 우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배려가 없는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세상은 젊은이의 눈을 통해 평가될 것이다.
‘그래, 이제 담배를 끊자!’ 당시 집사람이 둘째 아이를 가졌던 것도 담배를 끊을 동인(動因)이 되었다. 아기가 둘이 되면 최소한 큰 녀석은 내가 자주 놀아 주어야 한다. 아기에게 계속 담배 냄새를 풍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담배를 끊기 위해 정말 별짓을 다 했다. 근무시간 중에는 사탕이나 과자, 은단을 먹으면서 버티었다. 저녁에는 술을 많이 마시면서 담배를 왕창 피워 일부러 구토를 유도하기도 하였다. 담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를 피우지 않던 선배가 나에게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었다. 알렌 카(Allen Carr)라는 영국인이 2002년에 저술한 『스탑 스모킹(STOP! SMOKING)』이라는 책이었다. 작가는 33년동안 하루 평균 4갑 이상의 담배를 피우고 무수히 금연에 도전하였다가 번번이 실패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고통 없이 즐겁게 담배를 딱 끊을 수 있었던 비결을 전한다고 하였다. 호기심이 일었다.
책의 내용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습관이고 주변의 광고 등이 우리를 세뇌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마음의 컨트롤을 통해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말들이었고 내가 딱 원하던 책이었다.
때마침 나는 용인 법무연수원에 1주일간의 교육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교육 기간 중 담배 끊는 책을 읽고 담배를 끊겠다고 집사람에게 다짐하였다. 책을 소중히 담아 연수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수원은 수원 인근에 있어 일과가 끝나면 수원에서 회식이 많았다. 교육 기간은 딱 1주일밖에 없었다. 큰일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였다. 내 말이 허풍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짬짬이 책을 읽었으나 3분의 2 정도밖에 읽지 못하였다. 이대로는안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맨 마지막 장을 넘겼다. 책을 다 읽은 것으로 할 심상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않았으면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란다. 낭패다.
2006년 6월 16일 금요일 저녁, 교육과정이 끝나고 짐을 싸면서 다시 담배를 물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음에도 담배를 끊을 결정적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나의 굳은 결심이 이렇게 끝나는가? 허탈하였다.
당시 집이 있던 지방으로 가기 전에 수원에서 친구들 2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바람을 쐬러 바깥에 나와 있을 때 한 친구가 뜬금없이 말했다. “우리 담배 끊을래?”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나는 흔쾌히 답하였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담배를 끊으려고 무지애를 쓰고 있던 차에 나도 담배를 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힘이 되고자 했음이다.
우리 3명이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전에 담배를 끊었던 친구가 증인이 되어 주었다. 서로가 마지막 개비 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어 주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다. 담배에 대한 미련도 다 버리자. 우리는 초코파이에 성냥불을 붙여 금연을 자축하였다.
그 순간 머리를 심하게 맞은 듯이 깨달음이 왔다. 나에게 찾아온 귀중한 ‘해탈’의 시간이었다. ‘담배, 그거 끊는 것이 아니라 안 피우는 것이다.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피운다는 것의 반대말이 되므로 또다시 피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담배는 애초부터 안 피우는 것이므로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울 이유가 없다!’ 그렇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안 피우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담배를 단 한 번도 피우지 않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라도 담배를 입에 물었던 적도 없었다. 왜냐고? 담배는 안 피우는 것이므로. 금단현상? 그거 마음을 정리하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함께 맹세하였던 친구도 현재 담배를 안 피우느냐고?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한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다가 다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는 안 피우는 것인데 그 친구는 어쩌면 담배를 끊으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갇혀 있던 담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박찬록 변호사 약력
▲경북 안동 출생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30기 수료 ▲2001년 울산지검 검사로 임용.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법무부와 대검의 기획부서에서 검사로 근무하였고 상주지청장, 부산서부지청장, 부산지검 2차장, 수원지검 1차장 등 역임. 2024년 6월11일 서울고검 공판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 ▲現) 법무법인(유한) 해송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