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든 공식을 스스로 검증하는 '자가발행 금융' 민낯
"IPO보다 객관적"이라 외치지만, 근거는 내부 문서 뿐
리스크는 전부 투자자로...보호 장치는 全無
뮤직카우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객관적'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객관은 시장의 검증을 통과한 객관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데이터 안에서 스스로 확신하는 자기 암시형 객관이다. 그들은 모델을 만들고, 숫자를 넣고, 결과를 내며, 그 모든 과정을 자기 손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선언한다. "이건 객관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객관의 얼굴을 한 독단, 금융의 외피를 쓴 자가당착이다.
뮤직카우의 옥션 구조는 정교하게 보이지만, 정교함은 본질을 가리지 못한다. 상장 예정곡의 공모가는 회사가 임의로 선정한 다섯 곡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이 다섯 곡의 선정 기준은 공개되지 않고, 외부는 그 합리성을 검증할 수 없다.
즉, 시장은 이 숫자를 '믿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에 놓인다.
뮤직카우는 그 믿음을 '객관'이라 부르고, 투자자는 그 믿음의 대가를 '손실'로 치른다. 더 불편한 지점은 이들이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그 책임을 기계적으로 전가한다는 점이다.
투자설명서에는 이미 이렇게 쓰여 있다. "가치평가 방식의 가정과 예측치, 산정 오류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투자자 책임이다"
한 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당신 문제다"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면책이다. 뮤직카우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대신, 법적 책임의 최소화를 더 정교하게 설계했다. 리스크 공시를 보호장치로 포장하지만, 그 문장은 본질적으로 면책의 선언문이다. 즉, 뮤직카우의 시스템은 투자자 보호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경고했다"고 기록을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뮤직카우는 외부 검증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검증의 실체는 '감사'가 아니라 ‘서류 확인’이다. 검증기관은 뮤직카우가 제출한 자료가 "이론적으로 타당한가"만 살핀다. 데이터가 사실과 다른지, 가정이 현실적인지, 모델이 합리적인지는 묻지 않는다. 검증의 핵심은 진실이 아니라 논리적 형식이다.
이것은 금융의 본질에 대한 모독이다. 투명한 검증이란 입력값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뮤직카우의 검증은 출력값의 정합성만 따진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신뢰의 생사를 가르는 절벽이다.
뮤직카우는 IPO 시장의 주관적 수요예측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의 구조는 그보다 훨씬 더 주관적이다. IPO는 수십 개 기관이 경쟁적으로 평가하지만, 뮤직카우는 단 하나의 기업이, 단 다섯 곡으로, 단 한 모델로, 가격을 결정한다.
남의 주관은 비판하고, 자신의 주관은 ‘객관’이라 포장하는 그 태도는 금융을 경영이 아니라 서사로 이해하는 오만함이다.
뮤직카우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의 모델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 책임은 당신 것이다" 이 한 문장이 모든 시스템을 요약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이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조각투자'의 제도화를 서두르며, 이를 혁신 금융의 사례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이란 이름은 책임을 대체할 수 없다. 신뢰가 없는 혁신은 언제나 합법적 기만으로 끝난다.
뮤직카우는 음악을 자산으로 만든 플랫폼이라지만, 지금의 구조는 음악보다 훨씬 불협화음이다. 객관이라 부르는 수식은 회사의 방패로 작동하고, 외부 검증은 책임을 분산시키는 의례가 되며, 투자자는 언제나 그 결과의 최종 지불자다.
뮤직카우는 혁신을 말하지만, 그 혁신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객관성을 내세우지만, 그 객관은 스스로 만든 거울 속 환상이다. 이 시스템이 제도권의 문을 통과한다면, 그것은 금융의 발전이 아니라 감시의 후퇴다. 객관 없는 숫자, 검증 없는 절차, 책임 없는 리스크는 결국 '또 하나의 루나 사태'로 귀결될 것이다.
뮤직카우는 지금 "음악으로 돈을 나누는 플랫폼"이 아니라, "책임 없는 모델로 신뢰를 소비하는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
객관이란 단어를 이렇게 잔인하게 소비하는 기업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